[심형권 목사] 요한이서 1:1-6절 묵상
우리도 그 누군가에게 진리와 사랑의 편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문
이미 요한1서의 말씀을 묵상해 온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진리와 사랑을 권하고 있는 요한2서의 말씀은 요한1서의 요약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를 ‘적그리스도’로 부르는 것(요한일서 2;22절)도 똑같습니다.
비록 자신을 ‘장로’라고만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장로’가 요한1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으로 이해합니다.
전형적인 편지의 형식을 가지고 딱 일상의 편지의 분량으로 기록된 이 편지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보내졌습니다. ‘부녀’는 단수형이기 때문에 요한과 친분이 있는 익명의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에게 보낸 개인 서신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여기에서 ‘부녀와 그 자녀들’은 교회와 성도들의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부녀’로 번역된 헬라어는 ‘주인’을 뜻하는 ‘퀴리오스’의 여성형인 ‘퀴리아’(여주인)인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의 비유적 명칭으로 잘 어울립니다. 아마도 교회를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배경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2서를 노년의 목양자로서(=장로)의 요한이 익명의 한 지역 교회(=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성도들(=그의 자녀들)에게 보낸 서신으로 이해합니다.
요한은 이 짧은 편지 안에서 두 가지 주제를 반복하는데, ‘진리와 사랑’입니다. 이들은 ‘진리를 아는 자들’이고(1절), ’진리’로 하나로 되었습니다(2절). 이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는 것이 요한의 기쁨이고(4절), 이 진리와 계명 안에 거하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6, 9절)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4절). 그리고 그 진리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증명되는 ‘지식’입니다. 참 진리는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 대로 행하는 것”(6a절)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은 전해져야 하고, 성도는 진리와 사랑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나의 형편이나 처지가 복음을 따라 살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쉬거나 포기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진리와 사랑’을 따라 사는 것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을 깨닫습니다. 진리 안에 거하고 그 진리를 따라 사랑합시다.
특별히 목숨의 위협이 있는 곳에서, 성도임을 드러내기가 힘든 박해가 있는 나라와 민족들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교회들을 생각합니다. 그 곳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진리의 복음과, 결코 다함이 없는 사랑의 역사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그 누군가에게 진리와 사랑의 편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
[말씀 묵상] 예후의 기름부음, 심판의 시작 (열왕기하 9장 1-13절)2024-09-18
-
[말씀 묵상] 나 하나쯤이야..2024-09-18
-
[말씀 묵상] 누구와 연합할 것인가 (열왕기하 8장 16-29절)2024-09-17
-
[말씀 묵상] 추석 덕담 모음2024-09-17
-
[말씀 묵상] 우연이 아닌 섭리 (열왕기하 8장 1-15절)2024-09-16
-
[말씀 묵상] 좋은 동반자2024-09-16
-
[말씀 묵상] 사마리아의 참상의 반응 (열왕기하 6장 24 - 7장 2절)2024-09-14
-
[말씀 묵상] 분노의 독소2024-09-14
최신글이 없습니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