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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마태복음 21:1-11절 묵상

은혜가 먼저입니다.

본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주가 쓰실려고 합니다’는 말에 순종하여 자신의 나귀를 내어준 무명의 한 사람, 예수님을 반기며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는 무리들, 그리고 예수를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일들이 움직여져 가는 모습에서, 비록 나귀새끼를 타셨지만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주인’이시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십니다. 그럼에도 나귀를 타신 것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자신을 드려 백성을 구원하시는 ‘섬기는 왕’이심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모습이셔야 했을까요? 왜 왕으로 군림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낮추시는 것일까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죽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내려오셔야 우리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죄인의 괴수로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왕이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가 죽으셔야 우리에게 구원이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밀을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요한은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야 이 사건의 모든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요한복음 12:16절). 그리고 지금 이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자들이고, 이 사건의 의미와 교훈을 밝히 알게 된 특권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나의 죄를 대신한 대속적 죽음입니다. 그의 부활과 승천은 전심으로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 나의 왕 나의 구세주여’라고 고백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보증입니다.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지자, 종교 교사 정도로 이해해서는 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고 주권자이신 예수님의 철저하게 낮아지신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라는 사실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영생입니다.

 

그 분의 낮아지심이 나에게 가져 온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묵상합시다. 감사와 찬양, 감격이 넘칩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찬양의 고백이 이제 우리를 낮아지게 하고 섬기게 할 것입니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내가 메말라 있다면 줄 것도 없습니다. 은혜가 넘쳐야 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마음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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