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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마태복음 23:13-28절 묵상

일곱 번의 ‘화 있을진저!’ 구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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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과 위선을 경고하신 일곱 번의 ‘화 있을진저!’ 구문이 시작됩니다. 그들의 위선과 화려하고 외형적인 언변에 속아 많은 이들이 유대교에 입문했지만, 위선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구원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들이 모은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지 않고 자신들을 바라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복음 뿐입니다. 복음 앞에 서게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 인생은 오직 두 가지의 삶의 길, 즉 생명과 죽음, 천국과 지옥만이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갈 것이 두려워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하는 말만 전한다면 모두 멸망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습니다. 자기 마음에 맞고 자기의 욕심을 채워주는 맹세는 반드시 지키라고 하고, 손해보고 당장의 유익이 없어 보이는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이 정한 십일조는 그 이상으로 철저히 지켰지만 약한 자를 배려하는 긍휼과 정의와 믿음이라는 율법의 정신은 망각했습니다. 자신도 보지 못하면서 보는 척, 사람들을 속여 함께 멸망의 길로 가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부정한 음식이 되지 않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하루살이와 같이 하찮은 것들은 철저하게 걸러내는 순종의 모습을 보이면서, 정작 낙타와 같은 크고 부정한 짐승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덜컥 삼키는 위선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성전보다 성전의 금과 성전세를, 제단보다 제단의 제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성전과 제물에 관한 그들의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가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자신들의 잔치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어리석은 맹인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지혜로운 것 같지만 어리석고, 눈 뜬 것 같지만 보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본질을 무시하는 순간 껍데기 신앙이 됩니다. 직분이 문제가 아니고, 신앙의 연륜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안에 복음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말씀 앞에서 내면의 울림이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화 있을진저!’ 화가 있을 것이라는 위협이 아니라 화를 면하라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정죄함을 면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안의 위선의 탈을 벗고 복음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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