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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마태복음 26:17-35절 묵상

회개도, 믿음도 자랑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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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은 죽음의 천사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을 그냥 넘어간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어린 양을 잡는 유월절에 ‘세상 죄를 지고 가실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십니다. 마지막 만찬은 대속의 그림자인 수 많은 어린 양들과 실체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서로 겹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에 일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가롯 유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구원도 없었을 것이라는 궤변을 펼칩니다. 그러면서 가롯 유다는 구원의 역사에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은 영웅이라고 주장합니다. 가롯유다의 배반이 구원을 이루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롯유다를 가리켜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러면 좋을 뻔 했다’(24절)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가롯유다의 결정이었다는 뜻입니다. 가롯유다의 배반이 없어도 예수님은 죽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도록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인 가롯유다의 결정이었고 그의 책임입니다. 그의 배반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미리 아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절규하셨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들을 버리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셨습니다. 가롯유다의 배반이 아니어도 예수님은 죽으셔야 합니다. 성자 하나님이 죽으셔야 우리에게 구원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가롯유다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청각 교육을 하십니다. 유월절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자신의 찢어질 몸이라고 하시고, 포도주 잔으로 축사하시고 ‘죄사함을 얻게 할 내가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천국에서 다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제자들은 그 날이 오기까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의 예식을 계속 기념해야하지만(고린도전서 11:24-26절), 예수님에게는 이것이 마지막이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 죽음은 반복되지 않는 단번에 이루시는 희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게 될 때 거기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어린 양 잔치가 있을 것이고 내가 주 안에, 주께서 내 안에 거하는 하나 됨의 축제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끝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과 베드로가 에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이에 소망의 말씀이 끼어 있습니다.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32절)는 말씀입니다. ‘갈릴리’는 복음의 시작의 장소이고 제자들을 처음 만났던 ‘첫 사랑’의 장소입니다. 갈릴리로 먼저 가겠다는 것은 그 곳에서 너희들과 다시 시작하시겠다는 새 출발의 의미입니다. 처음 그들을 만나주셨을 때의 그 시작을 다시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저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롯유다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하셨고, 회개의 눈믈을 흘렸던 베드로에게는 갈릴리로 먼저 가 기다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이 ‘선택과 유기’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단어는 베드로의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이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것이나 도긴 개긴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도, 믿음도 자랑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모든 것이 십자가 희생과 사랑에 근거한 은헤 때문입니다. 은헤를 말하지만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십자가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만 자랑할 수 있는 믿음이기를 원합니다. 사람 앞에서 떠벌이는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던 세리의 영성(누가복음 18:13절)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은혜 안에 거하는 기쁨과 만족을 배워가고 알아가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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