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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조슈아 목사] 마태복음 25:31-46절 묵상

구원이 우리의 삶의 변화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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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은 섬기는 종,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장차 오실 예수님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하시는 사자(lion 계시록 5:5)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 때는 주님의 보좌 앞에서 양과 염소가 나뉘어 지고, 알곡과 죽정이가 가려지며, 구원과 심판, 영생과 영벌이 구별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선행’이 영생과 영벌을 나누는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40, 45절).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일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이 우리의 삶의 변화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았다면 그 은혜는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은혜가 감사해서 입니다. 형벌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 때문입니다.  심판을 피하기 위해 행하는 선행은 위선이고 끝까지 견뎌내지 못하지만, 은혜에 설득된 헌신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이고, 소망 가운데 끝까지 흔들리지 않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선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선행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에게 행했던, 그래서 아무도 몰랐던 선행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극히 작은 자가 바로 우리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40절).

 

사람의 칭찬을 기대하고 행한 모든 선행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원했던 사람들의 칭찬이라는 상을 이미 사람들에게 받았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6:2절). 하지만 은밀한 중에 행하는 자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마태복음 6:4절).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마지막 때 거기’ 라는 점에서 시험이고 도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야하는 칭찬을 지금 여기에서 까먹고 있지는 않는지…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광을 위한 선행은 아니었는지…하나님과 상관없는 선행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46절).

 

영생에 들어가야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대한 나의 실천을 통해 결정됩니다.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실천이 은혜로 받은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큰 일을 하면서 작은 일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주님의 눈과 마음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 작은 일을 큰 일처럼 모든 일에 귀한 섬김의 열매를 맺어가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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