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권 목사] 민수기 22:1-20절 묵상
길이 열렸다고, 내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본문
이스라엘이 이제 약속의 땅이 앞에 보이는 여리고 성의 맞은편 요단 동쪽의 모압 평지에 진을 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압의 왕 발락이 ‘발람’이라는 복술사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합니다.
발람이 살고 있는 ‘브돌’(5절)은 메소포타미아 북쪽 유브라데 강가의 변방 도시로 모압에서 600 킬로나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 먼 곳에까지 사람을 보내 발람을 부른 것은 그만큼 발람이 탁월한 복술가였기 때문입니다(6절).
발람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8절)고 하고,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9절)는 구절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안다고 그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점술’(24:1절)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행한 ‘예언’과는 분명 결이 다른 표현입니다. 그는 그의 점괘가 제법 먹히는 신통한 복술가였을 뿐입니다. 사탄의 힘을 빌어 능력을 발휘하는 가짜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신들을 섬기던 메소포타미아의 종교들을 고려할 때, 그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도 그 신들 중의 하나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을 저주해야 했기에 마치 복술을 행하듯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그를 주권자로 믿고 따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그를 막으시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발람의 신통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지키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발락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지만,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할 것’(창세기 12:3절)이라고 하신 아브라함 언약은 무너질 수 없습니다(12절).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명기 33:29절).
이 말씀을 듣고 발람이 사람들을 돌려보냅니다. 이렇게 끝났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발람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발락이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 백지 수표를 주면서 발람을 설득합니다.
이번에도 발람의 대답은 확고해 보입니다.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18절).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의심스럽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19절).
하나님께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보내실 리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라’고 하십니다. ‘가서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마음을 분명히 안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이 발락의 계략과 발람의 저주를 허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래 한 번 가 보아라, 그러나 너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반어법입니다.
길이 열렸다고, 내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 간절함 뒤에 내 욕심이 숨겨져 있지는 않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길이 열리지 않을 때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할지, 아니면 그 앞에서 멈추어야 할지, 아니면 돌아가야 할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오히려 열려진 그 길이 패망의 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빙자해 자신의 욕심을 이루는 것은 우상숭배이고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그의 뜻과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의 뜻과 말씀 안에 거하면 됩니다. 거기에 참된 행복과 평강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드러나는 것은 그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감사와 확신이 이 땅을 살게 하는 힘과 이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
[말씀 묵상] 예후의 기름부음, 심판의 시작 (열왕기하 9장 1-13절)2024-09-18
-
[말씀 묵상] 나 하나쯤이야..2024-09-18
-
[말씀 묵상] 누구와 연합할 것인가 (열왕기하 8장 16-29절)2024-09-17
-
[말씀 묵상] 추석 덕담 모음2024-09-17
-
[말씀 묵상] 우연이 아닌 섭리 (열왕기하 8장 1-15절)2024-09-16
-
[말씀 묵상] 좋은 동반자2024-09-16
-
[말씀 묵상] 사마리아의 참상의 반응 (열왕기하 6장 24 - 7장 2절)2024-09-14
-
[말씀 묵상] 분노의 독소2024-09-14
최신글이 없습니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