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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민수기19:11-22 묵상

죽음은 그 자체가 부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부정에서 벗어나 정결하게 되는 길이 있습니다.

본문

 

죽음은 그 자체가 부정한 것입니다. 죄로 인해 세상에 들어온 비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의 파급력은 엄청납니다. 시체를 만지기만 해도 부정해지고 시체가 있는 장막에 들어 가거나 머문 자도 부정해지고, 죽은 자의 뼈나 무덤을 만져도 부정해집니다.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해지고 그 부정해진 것을 만진 자도 부정해집니다. 심지어 부정해진 자에게 잿물을 뿌린 ‘정결한 사람’(18절)도 물을 뿌린 그 날 저녁까지 부정해집니다(21절). 부정함의 권세와 능력과 파급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과 힘은 강력하고 전염성이 강합니다. 너무도 쉽게 부정해집니다.

 

하지만 부정에서 벗어나 정결하게 되는 길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된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와 흐르는 물로 만든 ‘정결하게 하는 잿물’을 뿌리면 됩니다.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19절).

 

부정의 기간은 칠 일이고, 제 삼 일에 한 번, 그리고 제 칠 일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에 걸쳐 잿물로 정결하게 하면 제 칠에 정결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기간 안에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그냥 계속해서 부정하고 이스라엘에서 끊어집니다(13절). 부정의 기간을 칠 일로 한정한 것은 회복의 기회가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 기간 안에 해야 합니다. 오래 참으신다는 말과 영원히 참으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뜻입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끝날 때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 칠 일에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은 ‘안식 후 첫 날’(마태복음 28:1; 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6:2절)을 내다보는 장치입니다. 제 칠 일은 첫 창조의 안식이고, 제 팔 일은 재창조의 안식인 사망의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는 부활의 날입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 정결의 잿물이 사망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했듯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하게 했습니다. 그 잿물은 내 안에 있는 능력이나 결심이 아니라 나의 외부에서 나에게 부어진 ‘물’입니다. 해결의 열쇠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보혈의 능력에 있습니다.

 

성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사망의 권세를 이긴 자들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믿음을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절).

 

사망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우리를 정하게 했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감사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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