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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민수기 25:1-18절 묵상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쉽게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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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발락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 발락과 발람은 각각 자기의 길로 돌아갑니다(24:25절). 이 일이 일어나는 동안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싯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1절a). 이제 이 곳에서 11km만 더 가면 약속의 땅 동편을 가로지르는 요단 강가에 도착하게 됩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끝내는 마지막 관문, 마지막 장소입니다.

 

당연히 기대되는 것은 감사와 감격, 마지막 채비와 준비, 예배와 찬양, 이런 것들인데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1절b). 그 땅의 바알 축제에 초청을 받은 남자들이 거기에 따라갔다가 ‘바알브올(브올의 바알)에게 가담한’(3절) 것입니다. 가담했다는 말은 바알 축제의 음식을 먹고, 바알에게 절하고, 바알 앞에서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바알 제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광야 여정의 처음에 시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제사했던 영적 간음(출애굽기 32장)의 그림이 이 여정의 마지막에 음행 사건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복주시고 보호하시는데, 부모 세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출애굽 2세대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타락한 인간의 죄성을 봅니다. 광야에서 스러져간 앞선 세대의 죽음의 형벌을 보고서도 하나님의 진노의 엄중함보다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 뒤돌아봅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수령들을 잡아 나무에 달라고 하십니다(4절). 그런데 5절에는 모세가 ‘바알브올에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의 대표로 ‘백성들의 모든 수령들’(한글 번역에는 ‘모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빠져 있음)을 죽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바알브올에 가담한 수령들과 백성들을 죽이라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 이 엄중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성들의 수령 중 한 사람이었던 시므리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데리고(그들의 이름과 가문을 밝히고 있음, 14-15절) 자기 숙소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죄성이 아마 이런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진노를 부를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그 순간,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따라 들어가 정사 중에 있는 그들을 죽입니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고, 그 때까지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다고 9절은 기록합니다. 이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0:8절에는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삼천 명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남는 천 명이 재판관들에 의해 죽은 수령들의 숫자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그 행동을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한 행동’이라고 칭찬하셨고, 그 행위가 이스라엘을 소멸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노를 돌이키게 했다고 말씀하시면서(11절)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언약(11절)을 주십니다. 그 언약은 비느하스와 그의 자손들, 즉 제사장 가문과 맺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13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론 가문의 영원한 제사장 직분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히브리서 7:17절)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완성됩니다. 사람 제사장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하지만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않기’(히브리서 7:23-24절)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소멸될 뻔했던 이스라엘이 한 사람의 거룩한 행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납니다. 끊어질 뻔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죄의 저주 아래 있었던 우리는 아담의 죄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죄만으로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구원이 온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된 평화의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시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쉽게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오늘을 사는 이유이고 원동력이고, 그것이 이것이 구원받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은혜 안에서 감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내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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