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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2:1-19절 묵상

상과 인생의 판단 기준은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뿐입니다.

본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였고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첫 열매(3절)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기름진 땅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아예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헛된 것을 쫓아 헛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청년 때의 인애 (= 신실함)와 신혼 때의 사랑’(2절)을 잃어버렸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이 오히려 독이 되어 하나님 없는 제사, 생명이 없는 율법,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쫓아가는 삶,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사람들의 귀만 즐겁게 하는 예언이 난무했습니다(8절). 하나님의 선물인 약속의 땅과 기업을 더럽히고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7절).

 

상투적이고 습관적인 신앙, 성도의 겉 모습만 남아 있지 않는지요? 첫 사랑을 잃어버렸던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시록 2:5절)고 책망하셨던 우리 주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신앙의 연수가 더 깊고 짙은 성숙의 자리가 아니라 감탄사를 잃어버린 메마른 심령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루를 더 산 만큼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해 가는 여정이기를 소망합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그들과 ‘다시 싸우기로’ 작정하셨습니다(9절). 그들의 죄악을 두 가지로 요약하십니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둘째는 밑 빠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13절). ‘생수’는 물탱크와 다릅니다. 매일매일 일용한 양식과 같습니다. 조금인 것 같아도 하루를 살기에 충분한 은혜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 생수의 근원이시기에 매일매일이 영원이 되는, 결코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웅덩이를 팠습니다. 결코 만족함을 줄 수 없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갔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과 인생의 판단 기준은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 없이 얻은 것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연기처럼 헛된 것입니다. 부어도 다함이 없는 밑 빠진 웅덩이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이 죄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신중히 받아야 합니다. ‘악함’의 기준을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 하나님의 자리에 세상의 신들을 두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9절).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하고, 앗수르를 의지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그들에 의해 망했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것들이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한복음 7:38절)는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만이 영생을 줍니다. 지금 여기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현장이 되는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영원한 그 나라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고 오늘도 믿음의 길을 내딛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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