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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1:11-19절 묵상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에서 출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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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살구나무’와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살구나무(솨케드)는 히브리어로 ‘지키다’(쇼케드)라는 동사와 같은 어근(솨카드)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예레미야의 입에 담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신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의지를 보여줍니다.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끓는 가마’는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 국가로 이스라엘의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던 바벨론을 통해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이 시작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 만사의 이치이고 법칙입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고’(잠언 16;1절),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잠언 16:33절) 있다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사람을 계몽하고 인간 사회가 성숙해지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해방되고 ‘너희도 신처럼 될 수 있다’고 세상은 가르칩니다. 마치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꼬드긴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사망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너희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창세기 2:17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망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매일 목도하고 듣는 죽음의 소식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우상숭배임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한 남유다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16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육적 신분만 믿고 자신의 욕심을 쫓아 세상에 속한 것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사는 유다 백성들의 ‘죄악’(16절)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오류를 드러내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배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의 허리를 동이고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라’(17절)고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19절)고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17절)을 받은 대로, 하나도 남김 없이, 있는 그대로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에서 출발됩니다. ‘믿는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 만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유일한 구원자임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내 안에 숨겨진 죄악의 동기와 더러운 죄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인정함이 없다면 아직 믿음이 아닙니다.  

 

전하기 싫어도 전해야 합니다. 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복음이 내 안에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서 그때부터 그 말씀은 ‘복음’,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 되고,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죽이고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고, 돌이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복음 안에서 살고 전하는 이 땅의 나그네 여정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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