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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심형권 목사] 예레미야 4:19-31절 묵상

우리를 일으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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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남유다에 임하게 될 ‘패망’과 ‘탈취’와 ‘파멸’(20절)의 현실 앞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먼저 슬퍼하고 아파하고 답답해 합니다(19절). 그 아픔이 그를 잠잠하게 할 수 없게 한다고 토로합니다. 한 시대의 불신앙과 장차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는 선지자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절절함이 있었는지 뒤돌아봅니다. 죄악 된 이 세상과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사랑과 간절함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기를 기도합시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유다의 온 땅을 휩쓸고 지나갈 비참한 상황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었다’(23절)고 표현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할 때 그 혼돈과 그 공허입니다. 예레미야가 본 이 절대적 흑암의 상태는 ‘빛이 있으라’는 말씀으로 어둠과 무질서를 빛과 질서로 바꾸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기대하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구원은 죄로 오염된 피조세계와, ‘악을 행하는 데는 지혜롭고 선을 행하는 데는 무지한’(22절)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입니다.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온 땅은 황폐하고’(27절), ‘하늘은 어둡지만’(28절) 완전히 ‘진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28b절)이 계시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 세상을 재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이 거룩한 씨가 이 땅에 그루터기니라”(이사야 6:13절)는 말씀처럼, 시대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남은 자’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열왕기상 19:18절)이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성도들이, 우리들이, 그리고 나 자신이 그 ‘남은 자’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넘어져도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우리를 일으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온 그 사랑이 선포되고 나누어져야 합니다. 그 사랑이 진노와 심판의 불로 바뀌기 전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해야 합니다(디모데후서 4:2절). 이것이 남은 자들이 이 땅에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오늘도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나그네 여정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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