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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수 목사

[하나님 나라 백성] Back to Basics

예배 - 예배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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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배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 살펴볼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아담과 하와는 그 후에 아들을 낳게 되는데 첫째는 가인이고 둘째는 아벨이었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이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이었습니다. 농사와 양치기는 당시의 주된 직업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였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있을까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의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를 드리는 두 인물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반응, 그리고 벌어지게 되는 인류 첫 번째의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 같이 열납되지 못하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열납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이유에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까요?

 

창세기 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양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이 맞을까요?

 

레위기 2:14~16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야훼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과 기름을 모든 유향과 함께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야훼께 드리는 화제니라

 

레위기는 제사장의 직무 전반에 대해 다루는 책으로 제사, 정결, 절기 등에 대한 의식상의 여러 가지 지시가 들어있습니다. 여기서 “소제”와 “화제”라는 제사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제사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나 양, 비둘기 등의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도 받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이 제물을 곡식으로 드렸기 때문에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이 드린 제물의 가치가 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의 마음이 덜하다는 근거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이해할 수 없고 근거를 밝히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할 수 있는 성경 말씀이 다음 구절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4:6~7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이 하나님 앞에 선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7절의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그리고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는 구절은 가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받지 않는 사건을 통해 가인을 벌하시거나 버리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가인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가인을 테스트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분해하였고 안색이 변하였고 그 분노를 아벨을 향해 쏟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가인은 결국 아벨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열납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 삶의 제사를 말합니다. 아벨의 삶에 대해서는 성경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벨의 제사를 받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아벨이 어떠한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가인은 이에 대한 죄 값을 치르게 됩니다.

 

창세기 4:10~12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땅에 대한 저주는 땅을 일구던 농부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 죄 값입니다. 가인은 앞으로 땅을 일구어 곡식을 거둘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땅을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가인은 이와 같은 죄 값에 대해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4:13~14

가인이 야훼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내쳐지는 것에 대해 견디기 힘들어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죄 값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인에 죄 값과 함께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창세기 4:15

야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유랑자가 된 가인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보존을 약속 받은 것입니다. 보호의 표로써 생명의 안전이 보장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보호의 표로써 생명의 안전이 보장된 것은 단지 가인에 한해서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가인의 표는 죄 있는 인류를 위한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에 계속적으로 드릴 수 밖에 없는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 즉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더 나은 제사를 통해 결국 가인과 같은 모든 인간은 가인이 하나님께 보호받았던 것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두 가지의 더 나은 제사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께서 단번에 드리신 더 나은 제사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 제사는 온전히 예수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더 나은 제사는 바로 아벨이 드렸던 더 나은 제사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제가 3가지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개인예배, 회중예배, 삶의 예배. 그 중에서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는 회중예배이죠. 보통 우리가 예배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 회중예배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대부분 회중예배에 대한 부분이죠.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고, 그 중에서 주일예배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주일예배야말로 모든 예배의 꽃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함께 모여 드리는 회중예배가 예배의 꽃인 이유가 일주일 간의 삶으로 드렸던 예배를 완성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는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 삶이 쌓여서 주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렇기에 주일에 몸만 그냥 와서 드리고 가는 예배가 아니라, 한 주간 살아왔던 나의 삶을 제물로 드리고 가는 것이 주일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아벨이 드렸던 더 나은 제사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구별하여 드리는 삶의 제사, 즉 예배하는 삶을 요구하는 것이죠. 예수님이 드렸던 더 나은 제사는 우리가 드릴 수도 없고 따라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아벨이 드렸던 더 나은 제사, 삶으로 드렸던 제사, 예배하는 삶은 우리가 드릴 수 있으며 따라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가인의 제사로 드리느냐, 아벨의 제사로 드리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에 예배하는 삶을 선택해서 하나님께 삶을 드리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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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6 1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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