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Basics > 황성수 목사

본문 바로가기

황성수 목사

[하나님 나라 백성] Back to Basics

말씀 - 하나님의 말씀 듣기(1)

본문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 음성을 듣는 것이 신비한 일이고, 믿음이 좋은 특정한 사람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관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전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교제와 관계의 총괄적인 방식이 예배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런데, 보통 사람들끼리 교제하고 관계를 맺을 때 주로 무엇을 하나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제하고 관계를 맺지만, 주로 하게 되는 것은 대화죠.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당연한 방법이었음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15~19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야훼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야훼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동산의 있는 각종 나무의 열매는 얼마든지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절대 먹으면 안돼. 그 열매를 먹으면 넌 반드시 죽게 될거야. 그러니까 절대 먹으면 안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은, 집에서 어머니께서 자녀들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실 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아담에게 데리고 가십니다. 이 모습도 어머니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떻게 노나 보려고 이것저것 장난감을 사 들고 와서 그 앞에 펼쳐 보여주는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원래부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누듯, 하나님과 인간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죠.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잘 듣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인간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창세기 3장을 보면 이런 대화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3:9~13

야훼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야훼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계속적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찾으시다가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라고 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 이미 죄를 지은 상태입니다. 선악과를 이미 먹었기 때문에, 죄를 지은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죄를 지은 그 상태에서도 계속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3장이 마무리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단지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죠. 그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이 9절에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담에 이렇게 물으시죠. “네가 어디있느냐?”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아담이 숨었다고 과연 그 위치를 몰라서 이렇게 물어보셨을까요? 이 구절은 죄로 인해 관계가 멀어지고 거리가 멀어진 하나님과 아담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보면, 자녀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해서 부모님께 야단을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죠. 그런데, 자녀가 부모에게 잘못을 했다고 부모가 하는 말이 안 들리지는 않습니다. 맘이 상해서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밖에서 부모가 하는 말이 다 들리죠. 단지 마음의 거리가 멀어져서, 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할 뿐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하는 말들이 다 왜곡되게 들립니다. 아무리 자녀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도 자녀가 듣기에는 필요 없는 잔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떤 것인지 분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또 하나님 말씀이나 음성이 어떤 것인지 알기는 아는데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함께 읽은 시편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81: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이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은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실제적인 음성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시는 것인데, 외적인 음성내적인 음성으로 분류가 됩니다. 먼저 외적인 음성을 살펴보면, 우리가 조금 전에 봤던 창세기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종종 그 모습이 등장합니다. 하나의 구절을 예로 들어보면,

 

출애굽기 3:4~5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의 모습입니다. 직접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모세를 부르시죠. 성경에서 이렇게 외적으로 하나님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경우의 공통점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거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전이거나, 하나님께서 요청하신 일이 일반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거나, 외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이 되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에서조차 흔치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직접 활동하시게 되는 신약시대부터는 하나님의 외적인 음성을 직접 듣게 되는 경우를 찾기가 매우 힘듭니다. 이는 하나님의 깊은 곳까지도 통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계시고 그 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로 내적인 음성이라고 표현하죠.

내적인 음성이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생각 속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2~23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대화란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의 생각 속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음성이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 속에 전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안에서 깨닫게 되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죠.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주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내적인 음성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둘째, 성경 말씀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구절은 2월 첫째 주에 말씀드린 본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보편적인 계시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담겨져 있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음성이죠. 이것을 로고스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로고스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죠. 그런데 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감동으로 다가오고, 나에게 적용되는 말씀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레마의 말씀이라고 말하죠. 사실 로고스나 레마나 동일하게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말씀이란 단어인데, 레마가 로고스보다 조금 더 주관적인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고스는 기록된 말씀, 레마를 내 안에 해석된 말씀이라고 쉽게 풀이하죠.

이렇듯 우리는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나 음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깨달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죠.

 

셋째, 꿈과 환상

 

창세기 37:6~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요셉이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꿈을 꾸었다고 우리가 모두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꿈은 대부분 상징적인 것들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또한 모든 꿈이 하나님의 말씀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꿈은 정확한 분별이 필요하죠. 꿈과 환상의 차이점은 꿈은 잠을 잘 때 보여지는 영상이고, 환상은 멀쩡히 깨어있을 때 보여지는 영상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환상은 경험해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들려주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꿈과 환상은 대부분 경고의 메시지나, 격려, 인도, 명령, 미래의 계시를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넷째, 인상

 

요나 4:2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인상에 대한 정확한 사전적인 뜻은,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했을 때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느낌이나 그 작용’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요나는 ‘이거 가봤자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상이죠. 그 인상대로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결국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인상은 생각이나 감정, 오감에 주는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감정에서 오는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성령님께서 느낌적으로 우리에게 지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꿈과 환상처럼 분별이 필요합니다.

 

 

이것 외에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들이 있는데 그 방법들은 다음 시간에 알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6:46~49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 머물면 흙 위에 지은 집과 같이 그 믿음이 무너지기 쉽지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 바로 이러한 흔들지 않는 믿음입니다. 주변의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할수록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그러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작은예배자 회원등급 : 은하계 / Level 76
포인트 2,199
경험치 570,375
[레벨 76] - 진행률 3%
가입일
2022-12-16 13:06:08
서명
황성수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