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이란 무엇인가? > Rev. Joshua Lim

본문 바로가기

조슈아 목사

[부르심] 부르심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부르심은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본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과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갖 가축과 들짐승과 땅 위에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채워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 위의 온갖 씨 맺는 식물과 씨가 든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그러니 너희는 그것들을 너희 양식으로 삼아라. 또 땅의 온갖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생명 있는 모든 것에는 내가 푸른 식물을 먹이로 준다.” 그러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이 날이 여섯째 날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6-31절, 우리말 성경)”

 


222.jpg

 

 

대학교 4학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중국 길림성으로 한달 동안 단기선교를 가기 위해 후배들과 합숙을 하면서 준비중에 있었다. 당시에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단기선교팀을 이끌고 갈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특히 말씀을 공부하거나 묵상할 때에 오는 부담감은 상당했다. 후배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은혜를 나눠야 한다는 사실들이 나의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었다. 겉으로 들어나는 표정은 여유롭게 보였을 지라도 머리 속에는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얽혀서 돌아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짜여진 일정에 따라 묵상 시간이 다가왔다.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중 여섯째 날의 내용들이었다. 말씀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하나님, 무엇을 나눠야 합니까?”라고 끊임없이 기도를 했었다.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들었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려라”라는 내용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머리 한구석에 또다른 톱니바퀴가 돌면서 ‘후배들도 알고 있는 얘기들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잡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생육하여 번성하고 충만하게 다스리기 시작했다. 묵상에 대한 핀트를 잘못 맞춘 것이다. 묵상은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채워야 하는데, 나의 시선은 후배들에게 두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내 생각으로 채워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누는 시간은 다가오고 부담감이 가득 찰 때에 ‘하나님 어떡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절규하듯 기도하며 말씀을 볼 때에 나의 눈이 ‘여섯째 날’에 꽂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왜 하필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들었지? 첫째 날에 만들거나 둘째 날에 만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왜 하필 여섯째 날에 만들고 안식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만약 첫째 날이나 둘째 날에 창조되었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들자마자 “그럼 안돼”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첫째 날이나 둘째 날에 창조하셨다면 나는 분명히 하나님을 도와준다고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 이거 이렇게 만들어야 않아요?”라고 귀찮게 간섭할 것이고, 또 “이 나무는 여기다 심고, 이 냇물을 이렇게 파겠습니다”라고 앞장 서서 나설 것이 뻔했다. 그러면서 이 거대한 중노동에 힘들어서 투덜거리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끔찍한 일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알 정도였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가 나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천지 만물을 다 만드시고 안식하시면서 복되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마치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위해 이것들을 다 만들었다. 나랑 같이 너를 위해 만든 이것들을 누리자 꾸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 날 아침에 이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든 부담감들이 다 사라져 갔다. 하나님은 나를 일하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로 만드셨다는 사실이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7년 뒤에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내가 왜 꿈꾸던 선교지가 아니라 호주에 있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나님 앞에서 때를 쓰고 있던 시기에 동일한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에 큰 은혜를 받았던 말씀이기에 심령 깊숙이 박힌 말씀을 다시 묵상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는 말씀에 꽂히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하나님 앞에 엎드리 일이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이유가 선교사로 일을 시키기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해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모양대로 나를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셨는데, 그 복은 어떠한 직무 적인 기능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신 복, 즉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삼위 하나님의 모양대로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나와 함께 안식을 누리자 꾸나, 우리와 함께 하자 꾸나”라고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공동체에 초청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은 주신 것이다. 그 축복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녀로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부르심은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부르심은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며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르심에 대해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가? 부르심을 직무 적인 기능으로 여기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삐그덧 거리는 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교회는 신뢰를 잃어가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개독교라고 조롱을 받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르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무언가를 되는 것이 부르심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감히 말하겠는데 무언가가 되는 것은 부르심이 아니다. 우리는 부르심과 사명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부르심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친밀함 가운데 우리를 초청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부르심은 ‘하나님을 아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우리의 평생의 소원은 이 땅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미래가 창창한 나이 어린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생명을 걸어야만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곧 한 분이신 참 하나님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우리말 성경)”


1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한 회원 보기
추천한 회원
회원사진 헤세드
회원사진
JOSHUA 회원등급 : / Level 76
포인트 1,400
경험치 570,647
[레벨 76] - 진행률 5%
가입일
2022-09-20 08:05:29
서명
헤세드 크리스천 매거진 호주 편집장 DOOR OF HOPE INC 대표 YWAM DTS/BEDTS 제자훈련학교 강사. 중보기도학교/예배자학교 강사

최신글이 없습니다.

최신글이 없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