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1차적 부르심에서의 정체성 회복
본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한 후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려 듣고, 그 말씀을 지키라”고 요구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 특별한 보물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약속은 인류를 향한 크신 사랑과 거룩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해 이 땅에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흘려 보내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이 내미신 손을 붙잡고 “YES”라고 대답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손을 잡고 YES라고 대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 빨리 언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함께 거하시기 위해 알려주신 십계명과 성막에 대해 듣고 있는 모세가 자신들의 생각보다 늦게 내려오자 초조함 끝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라는 우상을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이방인들이 행하는 우상숭배 예식을 행하고 춤추며 축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애굽에서 직접 보고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을 주저 없이 만들게 된 것이다.
애굽의 열 재앙과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깨뜨리는 것에 대해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안에 아직도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와 같다’라는 애굽 시절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정체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약속의 땅 입구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광야에서의 불신앙을 보여준 출애굽 1세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목격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매 순간마다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버릴 수 있지?’라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나의 삶을 되돌아 볼 때 ‘나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 하구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릴 수 있겠구나.’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죄를 짓는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끄집어 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하시고 영원한 삶으로 구원해 주셨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믿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 백성으로의 삶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오직 하나님의 앞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행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일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보다 더 힘들다. 너무나 쉽게 죄를 짓고, 너무나 쉽게 세상의 가치관 대로 살아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나의 연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연약함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죄를 짓는 원인을 나의 연약함 때문이라고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죄 인줄 알면서도 우리는 죄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죄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아직도 옛사람의 습성 즉 애굽에서의 정체성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애굽에서의 삶을 기억하면서 육체의 정욕을 선택한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라고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섬기는 경우가 많이 있다. 주일에는 교회에 나와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삶 속에 재물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경쟁을 부추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더 특출 나고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펙을 쌓기 위해 집중하고 열심을 다하지만 하나님의 앞에 머물면서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행하는 것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님은 분명히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말씀하지만 우리는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나의 정체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의 옛사람, 사단이 끊임없이 속삭이는 거짓된 정체성을 버려야 한다. 그 정체성을 버리기 위해서는 날마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유혹의 순간이 다가올 때 십자가 앞에 나아가 못박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이상 죄에 구속 받는 자가 아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헐뜯으며 죄를 범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하며 사랑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의 죄성, 옛사람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성령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땅에 오셔서 지금 이순간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부족함도 충분함도 없다. 끊임없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도록 간구하고 그 사랑 가운데 머물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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